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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언어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단 하나의 소원 이야기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 넘치는 직원들

“부탁이오. 사라지지 않게, 나를 기억해줘.”

그 목소리는 너무도 희미하고 나지막했다. 빛바랜 오래된 종이 위에 새겨진 한 문장처럼, 사그라져 가는 잊혀진 언어 ‘리태마르’가 마지막으로 남긴 소원이었다. 수천 년간 존재했으나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서서히 사라진 이 언어는, 이제 완전히 잊혀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그 잊혀진 언어를 되살리기 위해 모인 이들은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 넘치는 직원들이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공간이었다. 마치 고대의 도서관처럼 생긴 이곳은 육중한 나무 선반과 고서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보존소에는 단순한 책들만 있지 않았다. 보존소에는 언어들이 눈부신 빛을 내며 살아 움직였다. 언어들은 눈동자처럼 반짝이는 음절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호, 그리고 다채로운 음파를 발산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이곳의 직원들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언어들을 수호하고, 잊힌 언어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수많은 모험과 연구에 나섰다.

직원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에라’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언어에 대한 사랑이 깊고, 잃어버린 언어들을 되살리는 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녔다. 에라는 매번 새로운 언어의 파편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과 소통하며 살아 숨 쉬는 언어의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이번에도 ‘리태마르’의 마지막 부탁을 듣고 금빛 펜을 들었다. ‘리태마르’는 언뜻 잊혀진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고, 마치 숨을 멈추는 듯 사라져 가는 음운의 궤적들이 연약하게 떠올랐다.

에라와 그녀의 동료들은 보존소 깊은 곳에 있는 ‘음소의 미로’로 떠났다. 음소의 미로는 언어들이 살아 움직이는 음절의 신비한 터널이었다. 각각의 구간은 다채로운 음파와 문자의 환영으로 가득했다. 그곳을 지나며 언어의 근본 비밀과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미로는 결코 쉽지 않았다. 감정이 격렬해질수록 언어들이 그만큼 빠르게 사라졌고, 잠자는 언어의 소원 또한 점점 흔들렸다.

모험을 진행하는 동안 각기 개성 있는 언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모리안’은 고대 부족들의 교류를 기억하는 수천 개의 명사들이 모여 형성된 언어로, 말하자면 ‘기억의 덩어리’랄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과거의 문화와 기억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또 다른 동료 ‘아이제트’는 음절 하나하나가 마치 작은 생명체처럼 존재하며, 감정을 갖고 주인공과 직접 대화하곤 했다. 아이제트를 통해 언어가 단순 도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리태마르의 마지막 소원을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언’이었다. 무언은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 생겨나는 공허한 틈, 말과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암흑의 영역이었다. 무언은 강력한 마력처럼 언어의 존재 의미를 먹어치우고, 소원을 실현하려는 이들의 의지마저 잠식하려 했다. 에라는 무언과 맞서 싸우면서, 언어의 다양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체감했다. 한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지 소통의 한 갈래가 끊기는 게 아니라, 독특한 문화와 인류의 지혜, 그들의 세계관이 함께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언어는 단순한 교환의 도구가 아니라, 각 민족과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그 자체입니다. 리태마르가 사라진다면 그들의 문화와 역사는 사라질 뿐입니다.”

에라는 깊게 숨을 쉬며 자신과 동료들에게 다짐했다. 무언의 어둠 속에서 빛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신중한 움직임으로 음절들을 모았다. ‘리태마르’의 문법 조각과 어휘 파편을 이어붙이면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마치 세포들이 다시 합쳐져 하나의 존재가 되는 순간 같았다. 마침내 언어가 다시 힘을 얻자, 그들은 모두 힘을 합쳐 무언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 모험은 단순히 언어를 되살리는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보존소의 직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언어가 갖는 마음과 감정, 그리고 대화를 통한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깨달았다. 서로 다른 언어들이 공존하고, 이질적인 문화들이 이해되는 진정한 의미의 ‘연결’ 말이다.

모험의 끝자락에서 리태마르의 생명체는 마지막으로 에라에게 속삭였다. “우리 모두 하나의 이야기 안에, 서로 다름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언어의 다양성이야말로 인류가 빛나는 이유다. 우리의 먼 미래에도 이 진실이 전해질 수 있도록 부탁한다.”

에라는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언어들을 포용하고 보존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리라. 그리고 이 모험이 끝나면 또 다른 잊힌 언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언어가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그들이 펼칠 다음 이야기가 곧 펼쳐질 것을 알기에, 에라와 동료들은 마음 속 뜨거운 불꽃을 더욱 타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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