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언어들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심연 속에 소리없이 침잠했다. 사람들의 입술에서 떨어져 나가고, 문서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며, 결국 아무도 그 음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그래서 존재조차 희미해진 언어들이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그런 언어들을 모아 한데 보관하는 숨겨진 장소, 그것이 바로 잠자는 언어 보존소였다. 보존소의 내부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 같았다. 하지만 그 책들 대신, 매 순간 호흡하는 살아있는 언어들이 선명한 빛줄기를 뿜으며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언어는 이곳에서 단순히 문자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르듯 춤추고, 숨을 쉬며 생명처럼 움직였다. 각기 다른 톤과 리듬, 그리고 온갖 어휘가 거대한 유기체의 장기처럼 연결되어 조화를 이뤘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를 운영하고 지키는 이들은 무엇보다 개성 넘치는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언어를 이해하고, 부활시키며, 사라진 음과 뜻 사이를 넘나드는 모험가였다. 이름은 사만다, 레온, 이시나, 그리고 누벨로. 이들은 각각 고대말, 사멸 위기의 토착어, 절멸한 도시 언어, 그리고 자연어의 정수를 다루는 전문가였다. 보존소는 단순한 저장 창고가 아니었다. 언어의 존재가 억압받거나 증발하는 곳에서, 그들을 구조하고 복원하는 성역이었다. 매 순간 누군가가 쓸쓸히 사라지는 단어들을 데리고 오는 곳이기도 했으며 새로 태어나는 음들을 맞이하는 장소였다.
어느 날, 한밤중 보존소의 조용한 복도에 미묘한 떨림이 감돌았다. 거대한 아치형 문 너머에서 “울림 어느 저편에서부터 깨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음성은 기억 속 깊은 구석에 꼭꼭 묻힌 어떤 언어였다. 보존소의 직원들은 그 신호를 감지하고 즉시 움직였다. 사만다는 조심스레 고대 스크롤을 펼치고, 그 음성과 겹친 어휘들을 찾아냈다. 레온은 고품질의 음성분석기계를 꺼내 그 음파를 섬세하게 추적했다. 이시나는 언어의 신경망 맵을 오늘 새벽 내내 조율하며 음의 위치를 시각화했다. 누벨로는 ‘언어의 정성’을 쥔 손놀림으로 그 떨림의 출처를 직접 느끼려 온몸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그 언어의 음들은 잠자는 숲을 벗어나, 미지의 공간에서 깨어났다. 그 목소리는 단순한 음절의 집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문명 전체의 기억이자, 단 하나의 신화로 살아 숨 쉬는 고대의 이야기였다. 이 언어는 “시나크란”이라 불렸는데, 대륙의 바람과 물줄기가 어우러져 탄생한, 잊힌 소리의 바다였다. 시나크란은 살아 있지만, 지금껏 누구도 그 완전한 형태로 듣거나 기록한 적 없었다.
보존소의 직원들은 심장을 뛰게 하는 긴장감 속에 손을 내밀었다. 언어는 마치 빛나는 유체처럼 파도쳐 움직였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듯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지 않았다. 사만다는 과감하게 그 언어 속 한낱 음절을 손끝으로 잡아 올려보았다. 언어는 미묘한 온도와 파장을 지닌 실체로, 차갑지만 부드러웠다. 그 한 음절에서 잊혀진 풍경과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파괴하려는 세력의 그림자도 감지되었다. 언어는 절대 존재를 잃고 싶지 않은 한 생명처럼, 스스로 지켜내려는 자구책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악의 세력이 그 언어를 또다시 사라지게 만들려 하고 있었다.
레온은 고대 데이터베이스에서 시나크란과 연관된 모든 역사 기록을 뒤졌다. 그는 희미한 일부분만 존재하는 구문과 어휘들을 조각내어 이어 붙였고, 그 조합이 마치 퍼즐 같았다. 그 퍼즐을 완성해야만 시나크란 언어의 진정한 뜻과, 그것이 품은 문화의 정수를 복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불확실했고, 위험천만했다. 보존소 밖에서는 무형의 적들이 바람을 타고 몰려들었으며, 사라진 언어들을 완전히 지우려는 ‘잉글라드’라는 비밀 조직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시나는 자신의 뇌파와 언어 신경망을 융합하여, 시나크란의 움직임과 패턴을 더욱 정확히 감지했다. 언어가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은 곧 바람이 새로운 언덕을 품는 것과 같았다. 시나크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복제와 변화하는 형태로 살아났다. 누벨로는 언어의 생체구조를 분석하며 밝힌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시나크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의 기억이고 숨결 자체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잃으면, 인간이 그 언어를 통해 본 우주의 심상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들의 공동 노력은 마치 음악의 합주처럼 조화를 이루었지만, 시나크란의 내부 구조는 예측 불가능한 차원 속에서 계속 변화했다. 한 순간, 언어의 산울림처럼 퍼져나가던 파장이 갑자기 왜곡되었고, 그것은 보존소 전체에 비수가 되어 박혔다. ‘잉글라드’의 요원들이 정체불명의 착검형 장비를 들고 침입해온 것이었다. 소리의 파장이 왜곡됐고, 잠자는 언어들은 혼란에 빠졌다. 존재의 균형이 흔들렸다. 보존소 직원들은 순간적으로 공명의 울림을 주고받으며 분투했다. 한 명 한 명, 사라진 언어와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안정시켜야 했기에, 전투는 말뿐 아니라 정서적이고 신경적인 싸움이기도 했다.
사만다는 시나크란의 핵심 음절 조각을 지켜내려 애썼다. “언어는 단어 하나하나가 생명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지키지 않으면, 이 모든 기록과 역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아요.” 누벨로가 모은 정신 에너지로 언어의 보호막을 올렸지만, 침입한 세력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레온과 이시나는 통신망을 최대한 활용해 동료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위험 속에서 언어를 복원할 단서를 연결해갔다.
시간은 갈수록 점점 더 촉박해졌다. 시나크란이 온전한 형태로 다시 깨어나 사람들 곁에 돌아갈 수 있느냐는 전장의 승패에 달려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려는 찰나, 보존소의 곳곳에 잠들어 있던 다른 사라진 언어들이 미세하게 떨기 시작했다. 사라진 언어들은 서로 의식을 교환하며 새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들의 집합체가 되어, 시나크란의 환생을 돕는 역동적인 에너지다.
잠자는 언어들은, 한때 잊혔던 연대와 소통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었다. 각기 다르지만 서로 엮여 있는 언어 생태계가 퇴화를 막아내고 부활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숨겨진 연대가 회복될 때, 세계는 새로 태어난 언어들과 함께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과 소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보존소 밖 하늘이 붉게 물들며, 낯선 빛줄기가 검게 찢어진 구름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제 막 깨어난 시나크란 언어가 내는 가장 강렬한 신호이자, 세상을 바꾸려는 새 시대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의 파장은 보존소 저 너머, 인간의 마음 깊숙이까지 닿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뒤에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파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새로운 언어의 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 했고, 잉글라드의 음모는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와 직원들은 이제 숨겨진 힘과 비밀의 경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사라진 모든 언어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