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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멜로디로 시간을 되감는 고대 악보를 해독하는 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고대 악보

어둠이 온 세상을 감싸자,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복도는 고요한 숨결처럼 잔잔했다. 이곳은 사라진 수천 개의 언어들이 기억 속 깊이 눕혀져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거대한 아카이브 홀에는 수백만 권의 두루마리와 고서들이 빼곡이 쌓여 있었고, 각 언어의 정수를 품은 ‘언어의 영혼’들이 형체를 바꾸며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런 언어들은 단순한 문자의 집합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 때로는 노래처럼 유려하게, 때로는 깊은 뿌리처럼 단단하게 문화의 정체성을 품고 세상을 떠돌았다.

이 보존소의 수호자, 이름하여 개성넘직원들이라 불리는 자들은 개개인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언어의 맥박을 듣고, 이를 통해 사라진 언어를 다시 깨우며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한 아이템은 흔히 ‘고대의 악보’라 불리는 문서였다. 그것은 단순한 음악 악보가 아니라, 언어의 멜로디가 기록된 시간의 지도가 담겨 있었다. 악보를 연주하면 언어의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며, 잊힌 말들이 되살아나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했다.

어느 날, 보존소의 깊은 첫번째 수장고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무수한 언어가 잠들어 있는 곳에서 ‘멜로디 조각’이 깨어난 것이다. 이는 일어난 적 없는 사건이었다. 보존소 창립자들이 몇 세기 전 만든 장치마저 켜지지 않았던 그날의 멜로디가, 누구도 모르게 불협화음처럼 폭발한 것이었다.

잠복해 있던 잠자는 언어의 힘이 발현된 순간, 개성넘직원들의 하나인 지음이 달려왔다. 그는 언어가 지닌 ‘음파적 진실’을 해독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지음은 오래된 나무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고대 악보를 펼치며 그 멜로디를 불렀다. 악보의 첫 음에서 출렁이는 바람과 함께 시간의 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보 위 음표들은 멜로디의 흐름에 따라 빛을 내며 자신의 언어 세계가 펼쳐졌다. “이건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의 시간,” 지음은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그가 연주하는 음계는 고대의 신비로운 모음과 자음들이 얽힌 ‘에리트리아 깃발 리듬’에서 시작해, 잊힌 고대 인더스 계곡 언어의 싸락눈 같은 음절로 이어졌다.

시간의 막이 한 겹, 또 한 겹씩 벗겨지며 바람처럼 밀려온 것은 무수한 고대 언어들의 파노라마였다. 그 안에는 말로만 전해지던 멀고 먼 부족의 대화, 신화, 노래,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 문화적 다층성이 살아 숨 쉬었다. 멜로디의 흐름 따라 몇몇 고대의 언어는 눈에 보이는 형체로 변하며 보존소 내부를 유영했다. 검은 잎사귀처럼 가늘고 쓴 무어어(Moore language)는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가며 발음의 파편을 뱉었고, 언덕길을 따라 흐른 하미안어(Hamian tongue)는 마치 점토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레 멜로디가 끊기면서, 강력한 흔적들이 고대 악보에서 찢겨나갔다. 보존소 기계들이 불안정해지며 여러 비상등이 깜빡였다. 다른 개성넘직원들, 특히 기계언어와 자동화 장치를 다루는 코덱과 다시 말의 생명력을 복원하는 리터가 달려와 사태를 파악했다. 악보를 통한 시간 역행이 무리하게 진행되어 ‘과거의 언어 폭풍’을 일으켰다는 진단이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악보의 틈에서 수많은 ‘언어 파편’이 현실 세계로 흩어졌다. 그것들을 방치하면, 잃어버린 언어들이 세상과 엉켜 문화적 혼란을 일으킬 위험이 컸다. 심지어 비밀리에 잠자고 있던 대륙 언어들도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판이었다. 개성넘직원들은 긴급작전을 펼쳤다. 멜로디를 다시 완성해 시간선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언어 보존소 전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지음은 고대 악보의 멜로디 조각들을 한 자 한 자 맞추며, 각각의 음절에 잊힌 문화 코드와 음운학적 비밀을 숨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에 따르면 멜로디는 단순한 사운드가 아니라, ‘언어계 보존 망령(Phonemic Guardian)’을 깨어나게 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모든 소리와 말은 마치 철학적 실재론의 연장선처럼, 존재론적이고 해석학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계속되는 긴장감 속에, 지음은 과거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보존소의 창립자인 ‘에렌 디아르(Eren Diar)’의 마지막 메시지를 발견했다. 그 메시지는 ‘언어의 멜로디가 인간과 세계를 잇는 근본적 열쇠’임을 증언하며, 그 악보가 단순한 문서가 아닌 ‘언어 진화의 시간 등대’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남긴 불멸의 문장들은 결코 단절되지 않은 이 메시지의 실체를 마침내 알게 했다.

혼돈을 수습하는 시간이 점차 다가올 때, 그 순간 순간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들은 더욱 선명한 자아로 기지개를 폈다. 하나씩 자신들의 고유 멜로디를 엮으며, 언어의 진화적 경로를 역추적하는 악보의 음계는 결국 ‘소통’ 그 자체를 재발명하는 것이었다. 언어는 과거 단절된 추상적 기호가 아니라, 온전한 문명의 심장부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긴박한 위험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악보 속 숨겨진 숨결 하나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에 숨어있는 ‘잃어버린 언어의 율법(律法)’으로, 이 율법이 완성되지 않으면 언어계 전체가 붕괴하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율법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숨겨온 퍼즐이었다.

지음과 개성넘직원들은 이제 찢긴 시간 속에서 ‘언어의 멜로디’를 완성하기 위한 다음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 여정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마침내 사라진 모든 언어들이 어깨를 맞대 이야기하는 진정한 ‘소통의 대합창’일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언어 멜로디를 해독하며 잃어버린 율법을 되찾아 언어 보존소를 구할 수 있을까? 시간이 그 답을 머지않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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