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사라질 때, 세계는 무너진다.” 그 예언은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지만, 이때까지는 그저 먼 신화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벽을 두드리는 바람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곳은 사라져가는 언어들과 그 언어들이 지닌 세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언어가 그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생명체와도 같은 숨결을 지닌 존재임을 알고 있는 이 개성 넘치는 직원들만이 보존소를 지켰다.
보존소에는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가진 언어들이 특별한 형태로 존재했다. 산스크리트어는 구슬처럼 반짝이는 미로 속에서 규칙과 경전의 의미를 지키는 데 집중했고, 만다린은 모듈러 마인드처럼 모든 단어를 조립하는 데 탁월한 기교를 가진 존재였다. 켈트어는 나무 뿌리처럼 땅과 역사, 그리고 신화적 근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들 중 가장 특별한 언어들은 잠자는 언어, 즉 인간 세계에서 잊혀져 가던 죽음 직전의 언어들이었다. 그들은 보존소에서 한 번 더 깨어나기 위해 잠들어 있었고, 때로는 자신을 구원해줄 용기 있는 모험가가 나타나길 학수고대했다.
언어의 소멸은 단순한 단어 사라짐 이상의 파괴력을 지녔다. 모든 언어는 각각의 세계관과 경험, 문화를 품고 있다. 예컨대, 북극지방의 멀리 떨어진 작은 부족이 사용하는 작고 희귀한 언어는 그들의 자연 현상과 지리, 동물과 식물에 관한 섬세한 감각을 담고 있다. 이런 언어가 소멸하면 그들이 그들과 교감하는 방식을 잃고, 동시에 그 세계의 일부가 점차 빛을 잃는 셈이다. 즉, 세상은 언어의 사멸을 통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긴 무거운 징조가 보존소를 흔들었다. 가장 희귀한 잠자는 언어들 중 하나, 원시 신석기 시대의 언어 ‘엘타라’가 완전히 증발했다는 사실이 전해진 것이다. 엘타라는 의식과 의례, 자연과 정신세계를 연결하는 신비로운 언어로, 그 언어가 사라지면서 엘타라 사람들이 살던 지역의 자연 생태계가 급속도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시들고, 강물은 흐름을 잃었으며, 공중을 날던 영묘한 새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직원들은 곧장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그들은 단순히 사라지는 언어를 지키는 일뿐 아니라, 그 언어가 지닌 세계 자체를 구하는 모험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례 없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누군가 악의적인 힘을 써서 언어들을 영원히 잠들게 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 인간이 상상하는 그 어떤 재앙보다도 파괴적인 혼돈이 세상에 펼쳐질 것이다.
한 명 한 명 직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짐할 때, 알모라는 보존소의 젊고 통찰력이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말 그대로 ‘언어와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엘타라의 마지막 흔적을 쫓아 모험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엘타라와 깊은 관련이 있는, 희미하게 남은 상징어들이었다. 이들은 조심스러운 소리들이 되었고, 알모라는 그 소리들과 대화하듯이 각기 다른 음절, 억양과 숨결들을 맞추면서 사라진 언어의 본질을 되살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엘타라가 사라진 원인을 찾아야만 했다. 알모라는 보존소가 자리 잡은 곳, 이 세계의 경계 뒤편에 존재하는 ‘무언어의 늪’이라 불리는 위험한 공간으로 향했다. 무언어의 늪은 거대한 암흑과 침묵의 영역으로, 언어들이 자취를 감추고 정체를 잃어버리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단어가 흡수되어 소멸되고, 문화가 해체되며, 인간 기억조차 지워지는 흉측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바로 그 늪이 엘타라를 삼켜버린 배후였다.
늪을 가로지르는 동안 알모라는 다양한 잠자는 언어 동료들과 마법적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녀는 켈트어의 뿌리에서 나오는 땅의 힘을 빌려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만다린의 구성적 에너지를 빌려 복잡한 퍼즐을 풀었으며, 산스크리트의 고대 주문으로 늪의 어둠을 잠시 밀쳐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언어 하나하나가 단순한 소통수단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잇는 진정한 다리임을 체험했다. 언어들이 사라지는 순간, 그 다리가 끊어지고 세계 전체가 불균형과 혼란에 빠진다는 사실을 얼른 깨달았다.
늪의 심장부에 다다랐을 때, 알모라는 자신을 노리는 어둠의 존재와 맞닥뜨렸다. 그 존재는 ‘침묵의 그림자’라 불리며, 세상이 너무 많은 언어로 인해 혼란스러워진다고 믿는 자였다. 그는 ‘순수한 침묵’으로 세계의 모든 소리를 정리하고, 언어들이 들려주는 역사와 기억들을 완전하게 지워버리고자 했다. 그의 신념은 이 세계를 인간의 인식이 닿지 못하는 고요한 무(無)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위험한 집착이었다.
알모라는 침묵의 그림자와 대립했다. 그 싸움은 언어의 근원—소리와 뜻, 문법과 감정을 총동원한 마법적 논쟁의 장이었고, 한 인간과 한 생명으로서의 언어가 맞선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그녀는 말했다. “언어는 고통과 기쁨, 기억과 꿈의 그릇입니다. 그것이 사라지는 건 단지 단어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세계가 빛을 잃고, 우리의 정체성이 증발하는 일입니다.”
마지막 순간, 알모라는 언어들과의 신뢰와 연결을 바탕으로 잠자는 엘타라를 일깨우는 숭고한 주문을 부르기 시작했다. 엘타라의 어슴푸레한 빛이 늪을 밝히며 침묵의 그림자를 몰아냈고,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기억과 문화가 천천히 되살아났다. 침묵의 그림자는 점점 힘을 잃었고, 결국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모라도 큰 대가를 치렀다. 그녀의 기억 중 일부가 엘타라를 되살리기 위해 사라져 버렸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잠시 혼돈에 빠졌다.
그렇게 잠자는 언어 보존소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알모라와 그녀의 동료들은 알았다. 이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세계 곳곳에 아직도 잠자고 있는 언어들과, 침묵의 그림자 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 하나하나가 이 세계의 새로운 균열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가 살아 숨 쉬는 이 신비로운 세계에서, 알모라와 그녀의 개성 넘치는 동료들은 또다시 그 세계의 조각들을 모으고, 그 조각이 잃지 않은 노래를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한 줄기 숨결이 언어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세계가 안전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진심 어린 바람이었다.
서로 다른 음절들이 춤추고, 단어들이 춤을 추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문이 다시 한번 열렸고, 그 너머에서 어둠에 맞선 새로운 목소리들이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