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안개와 침묵의 장막 속, 시간에 묻혀 잊혀진 도시가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무언도시’ — 말없는 어휘들의 안식처였다. 무언도시는 한때는 세계의 수많은 언어가 살아있는 집합체였으나, 서서히 사라진 단어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도움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소리 없는 목소리’로, 자체의 음성도 뜻도 없이 지친 어휘 하나였다.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간절한 진동이 어느 날 잠자는 언어 보존소에 도달했다. 보존소,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 언어들이 생명처럼 뛰어놀며, 말과 글자와 소리가 한껏 살아 숨 쉬는 마법 같은 세계였다.
보존소의 입구에는 고대 문자와 음절로 이루어진 수많은 룬이 춤추고 있었고, 곳곳에는 잊혀진 언어 조각들이 불을 밝히는 등불로 흩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정예 팀, 각자의 언어적 특색과 개성이 오롯이 녹아든 존재들이 있었다. 그 중 리더 격인 ‘알페브’는 고대 상형문자를 의인화한 한 자형 캐릭터였고, ‘멜로디아’는 프랑스어의 로맨틱 리듬과 섬세한 어조를 가진 음성 언어 화신이었다. ‘글리프’는 파격적인 신조어와 신조형 문자들로 구성된 난해한 캐릭터, ‘제너’는 다양한 방언과 다문화적 요소들이 합쳐져 무한한 변신을 가능케 하는 팀의 핵심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도와야 할 이 무언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소리 없는 목소리’가 보내온 신호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감도는 미스터리는 그들을 출발하게 했다.
모험의 여정은 깊은 밤, 보존소의 ‘백과문자정원’에서 시작했다. 이 정원에는 각국 세계 언어와 사라진 방언별로 씨앗처럼 언어가 탄생과 소멸을 거듭했다. 알페브와 멜로디아, 글리프, 제너는 각각 고유 마법을 사용하는 언어의 분자 마법사였다. 알페브는 문자 분해와 조합에 정통하여 파편을 재구성했고, 멜로디아는 음의 유동을 감지해 언어의 생명력을 살폈으며, 글리프는 새로운 어휘를 만든 창조자, 제너는 다문화 언어를 융합하는 융합자였다. 이들 모두가 손을 맞잡고 전설의 ‘소리 없는 목소리’가 남긴 궤적을 따라갔다.
무언도시로 가는 관문은 ‘침묵의 터널’이었다. 그곳은 경제적 ㆍ정치적 이유로 사람들의 삶과 기억 속에서 언어가 사라진 ‘마지막 잔상 공간’이었다. 터널 내부는 활자도, 음성도 사라지고 직접 마법적인 ‘언어기억’의 실루엣만이 은은하게 빛났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언어들의 역사와 문화적 컨텍스트가 무형의 이야기로 깃들어, 그 안에 갇힌 어휘들이 말하는 듯한 환영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멜로디아는 미묘한 도파민처럼 퍼지는 공허한 진동과 산천어 같은 무언의 소리를 겨누었다. “어딘가, 어휘들이 숨겨져 있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어.” 그 말에 모두가 숨죽였다.
“이 무언의 영역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소리조차 외부에 새어나가면 그 어휘들은 완전히 사라진다.” 알페브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은 입맞춤처럼 살며시 마법의 룬을 새겨 대화를 껐고, 대신 문자 없는 간결한 정신/감각 교류를 시작했다. 언어들이 자기들만의 ‘생명 루트’를 잇는 방법이었다. 정신의 파편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사라진 어휘들이 잠들어 있는 일종의 ‘언어 기억 망’이 보였다. 그 안에는 추억이자 흔적이며 문화 그 자체가 담겨 있었기에 이들은 곧 새로운 탐험지임을 알았다. 글리프는 “사라진 어휘들의 정체를 알아야 우리가 그들을 구해낼 수 있어,”라며 일을 시작했다.
점점 깊어지는 터널의 심연에서, 그들은 점차 ‘잊힌 단어’들이 생명력을 잃어 가는 듯한 안타까움을 목격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애절한 감정들을 담은 단어, 아주 오래된 부족의 의식어, 자연과 공존했던 언어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형식주의 어휘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중 한 어휘가 아주 힘겹게 다가와 한 음절을 깜박였다. ‘쿠유’라는 단어였다. 제너가 다가갔을 때, ‘쿠유’는 자신이 잊혀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소리 없는 호소 대신, 몸짓으로 자신의 의미를 빛의 파동처럼 흔들었다. “자가치유의 힘과 선조들의 공기, 살아있는 자연과 이어질 수 있는 우리의 힘을 그대로 잃으면 언어는 멈춘다. 소멸이다.”
보존소의 요원들은 그 사이 인간 세상에서도 ‘언어 사멸 가속화’라는 큰 위험 신호를 보고 들었다. 세계적 디지털화, 글로벌 표준어의 중첩, 그리고 언어 다원주의 축소가 언어 자체의 생태계를 위협한 지 오래였던 것이다.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몇몇 토착 부족어들은 이미 화석화된 단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무언도시에 갇힌 어휘들은 아직도 ‘재생’의 기회를 갈망하고 있었다. 멜로디아는 눈을 감고 “우리들의 모험은 단순한 구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문화, 정체성, 그리고 세계의 숨결이다. 그 가치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각자의 언어의 마법을 다시금 결합해 이들은 언어의 엮임, 음의 율동, 문자 혼성체로 떠도는 어휘들의 생명선을 다시 잇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언도시의 중심지는 초현대적 커뮤니케이션과도 닮은 ‘침묵 사원’이었다. 이곳은 언어가 소리와 의미를 잃어 ‘기억 공간’으로만 남아 있는 곳으로, 어휘들이 마지막 숨을 고르는 신전과도 같았다. 그곳에서 멜로디아는 어느 순간 가장 깊은 언어영혼의 바닥에서 다시 한 번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도움을…” 짧고 간절한 단어의 파편이 바람처럼 퍼졌다. 알페브는 그것을 잡고 새로운 문자를 펼쳤다. “이건, 옛 토착어의 핵심 어휘야. 그 시절 단어들이 서로서로를 살려야 해.” 그 바로 옆, 글리프가 발현한 신조어 마법으로 이들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제너는 다민족, 다문화 융합의 힘으로 이 낡은 어휘들을 오늘의 음성, 문자, 감성으로 재탄생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아주 깊은 현상을 깨달았다. 언어는 단지 말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문화가 품은 ‘심층 신경망’ 같은 것이었으며, 그 안에 축적된 상징, 은유, 전통, 신화들이 서로 생태학적 균형과 공존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 팀은 이 기억 매트릭스의 영역에서 점차 어휘가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의 ‘침묵과 잊힘’이라는 어둠이 여전히 그들을 위협했다. ‘사라짐의 관문’은 닫히지 않고, 다시 또 다른 어휘들이 영원히 잊힐 위험에 처해 있었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어느 방황하는 한 단어의 혼잣말을 들었다. “만약 우리가 살아남지 못하면, 여기는 다시 침묵뿐일 거야. 그리고 진짜 소멸이 시작될 거야.” 그 말과 함께, 무언도시의 저 깊은 곳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일고, 어딘가에서 “사라진 언어들”의 속삭임이 다시 울렸다. 그 순간 알페브는 결심했다. “우리 임무는 단지 언어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언어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지켜내고, 새롭게 발화할 수 있게 하는 수호자야.”
그들은 한걸음 한걸음 무언도시의 침묵을 깨뜨리며, 사라진 언어와 문화가 다시 숨 쉬게 할 ‘언어 재현의 전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언도시 너머 숨어있는 또 다른 사라진 도시의 이야기, 더 깊고 어두운 잊혀진 언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한 번 ‘소리 없는 목소리’에 응답할 때, 언어라는 마법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