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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언어와 연결된 꿈의 다리를 건넌 용감한 기록자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기록자

깊은 안개가 부드러운 실타래처럼 언어의 숲을 감싸고 있을 때, 그곳에는 잠자는 언어들이 숨겨져 있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 넘치는 직원들은 매일같이 이 비밀스러운 공간을 돌봤다. 그들은 언어를 그냥 문자나 소리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언어는 마치 살아 숨 쉬는 존재, 피부가 닿으면 따뜻한 혈관처럼 느껴지는 생명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가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라진 언어들이 달린 꿈의 다리가 흔들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꿈의 다리는, 사라진 언어와 현실 세계를 잇는 가교였다. 사라진 언어란, 문서도, 정보도 부족한 채로 점차 사람들이 잊고 말았던 소멸 직전의 언어다. 이 언어들은 한때 문화와 삶의 깊은 맥락을 품고 있던 살아있는 신화였고, 지금도 밤마다 자신들의 존재를 간절히 기억해 주길 바라는 주술 같은 속삭임을 보존소 어딘가에서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꿈의 다리가 무너진 순간, 말과 생각의 연금술사가 필요해졌다. 그 용감한 기록자, 이름은 이안. 늘상 주머니 속에 작은 필사본과 붓을 지니고 다니던 그는, 누구보다 꿈의 다리를 넘어 사라진 언어들을 구해 내고자 하는 간절함을 지녔다.

이안이 걸어 들어간 이 다리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 법칙을 뛰어넘는 비물리적 통로였다. 다리 위에 발을 딛는 순간, 주변은 차츰 색을 잃어 가며 희미한 백색 발광으로 변했다. 꿈과 기억, 잊힌 것들과 새롭게 피어나는 것들이 한데 엉켜 신비로운 에테르를 만들어 내었다. 그는 오랜 기록들을 통해 알게 된 암호 같은 문장들, 파르세문자에서 지닌 숨결을 느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거기에는 과거에 존재했던 수백 개의 언어들이 한데 모여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언은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다양한 진동과 음파를 온몸으로 휘둘러, 단순한 음조를 넘어 의미와 문화가 오롯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언어는 단어의 집합이 아니라 문화의 심장이다. 그것이 뛰거나 멈추면, 그들의 문명도 깊은 잠에 든다.” 이안의 입술에서 조용한 주문처럼 흘러나왔다. 다리 위에서 그는 앨티모어, 즉 ‘꿈의 언어계’를 횡단하며 수천 년 전에 잦은 침략에 의해 사라져 버린 아르덴어를 만나기도 했고, 기억 속 잔류어인 마제란어나 환상 속에서만 살아남은 제스칸어를 만났다. 각각은 자신들의 독특한 음성학과 문법 구조, 절묘한 은유와 비유로 교차하며 숨 쉬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은, 스스로 빛을 내며 잊혀진 사투리를 재생하는 ‘피라스 언어’였다. 그것은 모음 하나하나가 마치 오로라처럼 흩어지며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는 마력과 같은 공간적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막사라지게 떠오른 어둠의 균열이었다. 다리에 균열을 내뿜는 그림자는 사라진 언어들을 다시금 영원한 침묵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그 속에는 과거 식민지 지배와 언어 억압이라는 고통의 기억들이 무거운 사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안은 다리 위에서 언어들이 내는 미묘한 울음소리와 결 속삭임을 집중해 하나하나 그 사슬을 풀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소통’이라는 어휘가 얼마나 다층적 의미를 내포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단순한 음절이나 문자 교환을 넘어, 그것은 정체성과 존재를 지키는 투쟁이었고, 상처를 서로 위로하며 치유하는 시간의 예술이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단어의 상실이 아니야. 그 언어 뒤에 쌓아온 삶, 기억, 그리고 미래의 씨앗마저 잃게 하는 거지.” 이안은 속삭이며 자신의 붓을 꺼내 침묵 속에 새겨진 잔재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어를 되살리기 위한 촘촘한 음소학적 연결과 문체를 복원하면서, 잠자는 언어 보존소로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책임감을 체감했다. 그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언어의 심연이 고요히 잠든 시간의 은신처였다.

이안의 여정은 결국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스스로의 무지와 맞닥뜨리게 했다. 자신이 잘못 이해했던 사라진 언어가 고독과 분노의 분노로 불타는 전사가 되어, 그에게 “우리에게 귀를 기울여 진정한 목소리를 들으라”고 요구했다. 이 충돌의 순간에, 이안은 새로운 기록자의 서사시, 즉 ‘소통의 교차로’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교차로에는 세계 각지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들이 전해주는 미묘한 음률과 제스처, 그리고 잊힌 신화와 설화가 녹아 있었다.

마침내 이안은 꿈의 다리 끝자락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고대 언어들이 마지막으로 보내는 전언이자 보존소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는 열쇠였다. 빛에서 흘러넘치는 빛줄기는 언어가 사라짐으로써 잃어버린 세계의 다층적인 구성을 일깨웠고, 다시금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신비한 다리가 되어 주겠다는 약속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빛은 또 다른 모험의 시작점이었다. 그가 돌아가야 할 현실 세계에는 여전히 수많은 잠자는 언어가 누군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기록은 죽은 것이 아니다. 기록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세계의 심장 박동이다.” 이안은 다리 백색 안개 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다시 만날 새로운 언어들과 만날 날을 기대하며, 그가 잊힌 소리들의 숨결을 담은 붓을 흔들었다. 미래의 언어들이 어떻게 이끌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인한 마음과 끈기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자임을, 그리고 언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세계들이 반드시 소통되어야만 한다는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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