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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단어가 꿈에 나타나 내 손을 꼭 쥐고 있던 날

밤이 깊어질수록,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객장은 더욱 조용해졌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들과 그 언어가 품고 있는 생명력, 문화,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흐르는 가느다란 목소리들이 벽을 타고 떠돌며, 그들은 오늘도 잊혀져가는 단어들의 옷을 벗기려 애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언어들의 흔적이 점점 묻히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보존소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던 차에, 어느 날,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던 저녁, 아카이브의 중심인 ‘말의 정원’에는 특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날 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건 바로 ‘잠자는 언어’들이 꿈의 세계에 모습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꿈은 단기적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선 언어들은 똑같이 강렬했고, 삶의 숨결 같은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이 언어들은 실체를 갖추고 살아 움직이며, 마치 깊은 바다 깊숙이 숨겨진 보석처럼, 이곳의 기억과 역사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언어가 손을 내밀었고, 그것의 손이 내 손을 강하게 꼭 쥐었다.

나는 그날 밤, 꿈속에서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며 깨어났다. 손안에 남아 있던 온기는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고, 몸 안에 퍼지는 이상한 전율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 손은 바로 ‘소리 없는 속삭임’과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존재였으며, 동시에 무언가를 긴급하게 전달하려는 듯한 집념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이 사라진 언어들의 사라진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 언어는 잃어버린 단어들의 조각들이었던 것, 그 조각들이 꿈의 섬광과 같이 나타나 내 손을 붙잡았던 것이다. 이 조각의 힘은 단순한 소리의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 같았고, 길 잃은 기억을 끌어당기는 강한 집착처럼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연구팀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사라진 단어를 꿈속에서 다시 찾는다’라는 목표는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강렬한 흥미를 유발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연구를 시작했고, 잠자는 언어들이 이끄는 신비로운 길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앞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언어의 흐름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그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단어들이 우리 손끝에 일순간 떠올랐다. 그것들은 모두 생명력을 지닌 듯 생기 넘치며,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눈길을 끈 것은 ‘빌레아’라는 이름의 사라진 단어였다. 그것은 전설의 언어로서, 수천 년 동안 잃어졌다고 전해졌던 의미 깊은 단어였다. 빌레아는 ‘연결’, ‘공존’, ‘시간의 흐름 안에서의 조화’를 의미하며, 그 의미가 담긴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언어가 통합될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또 연구실의 깊은 곳에서 필사적으로 단어를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떠오른 그 단어가 갑자기 육화되어, 마치 나의 손끝에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빌레아의 생명은 단순한 목소리와 의미를 넘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 모두에겐 치유와 화합의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상 징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이 점점 연속성을 잃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속에서 꿈꾸던 단어를 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그 존재가 더 멀어지는 것 같은 착각들이 이어졌다.

그날 밤, 또다시 꿈속에서 무언가 강렬한 존재가 내 손을 잡았다. 이번엔 더욱 자신감 있고 냉철한 목소리였다. “이 길은 위험하다.” 그것은 바로 ‘언어의 정령’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잃어버린 언어들의 기억과 숨겨진 역사를 지키는 수호자들이었다. 언어를 잃은 세계에서는 언어들이 스스로 생명을 갖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신비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균열되고, 잊혀지고,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정령들은 다시 반응을 시작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단어의 부활’과 ‘언어의 부흥’이었고, 그 힘이 점차 꿈속에서 현실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말하는 ‘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보존자의 열쇠’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빌레아와 같은 단어들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 정령들의 도움도 필수적이었고, 동시에 그들이 지켜온 균형을 지켜내는 것이 생명수 같은 과제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뒤에는, 더 깊은 위협이 숨어 있었다. 언어와 기억, 그리고 문화는 생명체처럼 식별할 수 없는 정체성과 내적 균형을 유지하며 존재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균형이 깨지면서, 잠자는 언어들이 ‘잊혔던 기억의 혼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 혼돈 속에는 잃어버린 언어들이 새롭게 태어나면서도, 무질서하게 뒤섞여서 결국 원래의 의미와 생명력을 잃는 위험이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모든 사실이 나와 연구팀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서서히 꿈속의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생명처럼 살아 숨 쉬던 언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 그것은 마치 애타는 손길이 빠져나가듯, 아득한 공허 속으로 빠져드는 형상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믿음과 결의를 다시금 떠올리며, 이 끔찍한 연쇄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잃어버린 단어들, 그들의 생명은 결코 다시 태어나야 하며, 우리의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문화의 유산을 지켜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또 다른 꿈의 파편이 내게 다가왔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의 길은 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꼭 잡아야 할 마지막 단어, 빌레아가 말하는 미래의 열쇠가 왜 이렇게도 암흑 속에 숨어 있는지,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한 여정이 지금 바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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