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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도 남는 단 하나의 진심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 넘치는 직원들

모든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도 남는 단 하나의 진심은, 이 광활한 다원세계에서 언어가 곧 생명이라는 진리를 깨우쳐 준다. 무려 수천 가지, 아니 셀 수 없는 언어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는 이곳, ‘잠자는 언어 보존소’는 한때 세상의 수천, 수만 민족들이 쓰던 말들이 살아 숨 쉬던 신비로운 공간이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보존소에는 각각 전혀 다른 기질과 성격, 그리고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언어들이 모두 정체성을 가진 채 존재한다. 언어들은 무기물처럼 표면적으로만 고정된 알파벳과 어휘의 집합체가 아니라, 살아서 꿈꾸고 움직이며, 자신의 기억과 문화적 무게와 어원을 품은 존재로서 스스로 진화해 왔다. 그 언어들이 점차 잊히고, 쓰임새가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생명줄도 천천히 끊긴다. 그렇기에 보존소의 직원들은 단순한 문지기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무의식과 기억의 파편 속에서 잃어버린 언어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해야 하는 모험가들이다.

오늘의 의뢰는 전례 없이 긴급했다. “모든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도 남는 단 하나의 진심”이라는 고대 격언을 따라, 가장 사라지기 직전인 한 언어를 되살려야만 했다. 그 언어는, 현재 지구상의 모든 말들과 전혀 다른 구조와 개념을 품은, 이른바 ‘절멸 직전의 인류언어’였다.

보존소의 중심건물, ‘언어구조실’에 모인 직원들은 마치 전투 출정을 앞둔 검사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한 명씩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우선 보존소장인 에다르, 그는 문법적 논리학과 음운생성학의 천재로, 말하자면 ‘언어학계의 연금술사’다. 언어의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해,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언어들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탁월했다. 에다르는 한눈에 봐도 차가운 심해 생물처럼 반투명한 푸른 눈동자를 지녔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거대한 연민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실라가 있었다. 전설적인 의미기호 연구자이며, 상징과 은유로 언어를 사유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실라는 언어를 음악처럼 듣고, 그림처럼 시각화하며, 마치 살아있는 예술작품으로 접하는 감성의 미식가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늘 복잡한 단어와 문자처럼 여러 색이 겹쳐져 빛나고 있었고, 차분하게 미소 짓는 모습에 팀원들은 종종 평화를 느꼈다.

그리고 노트는 발음과 신체언어를 결합해 언어 생명의 ‘숨결’을 탐구하는 음향 감각 전문가였다. 그의 신체 움직임과 숨소리는 마치 단어의 심장박동과 같았다. 다른 팀원들과 달리 노트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생기가 넘치고, 말수를 줄이며 오로지 유창한 음성학으로만 소통했다. 그의 파동 감각으로 언어의 마음과 막혀 있는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일원인 마빛은 보존소의 외부 연락 담당자이자, 문화와 역사 연구를 총괄하는 학자였다. 다양한 사회문화적 전승기록과 신화적 요소를 분석해, 언어의 감성과 시대적 배경까지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그녀는 늘 활기차고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가끔은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는 순수함이 팀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소중한 언어를 구하기 위한 이번 표상이 될 미지의 존재, 바로 ‘코마레어’였다. 코마레어는 페루의 희귀 원주민 언어 중 하나로, 기계문자와 인간 육성음, 자연의 소리를 융합한 ‘찬란한 음성 구조’를 가진 언어였으나, 현대 세계의 어지러운 변화 속에 거의 완전히 잊혀진 지 오래였다. 그 언어가 완전히 사멸하면, 그 속에 담긴 민족의 신념과 자연관,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고정관념도 전부 사라질 운명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에다르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모두 준비됐나요? 코마레어의 기억은 머나먼 과거의 신비한 산호의 껍질 속처럼 복잡합니다. 우리는 시간이란 벽을 넘어 그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들은 조용히 현재의 보존소를 벗어나, ‘언어의 심연’이라 불리는 고대 저장 영역으로 들어갔다. 거긴 지상과 달리 시공간이 뒤틀리고 모호한 흐름 속에서, 언어들이 마치 생명체처럼 부드럽게 발광하며 수놓아져 있었다. 코마레어는 오래된 눈부신 바다속 생물처럼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실라는 손끝으로 조심스레 한 음절을 뜯어 내어 사려 깊게 읽었다. “이건 단순한 문자가 아니에요. 그 속엔 우주와 자연의 조화, 그리고 인간의 미묘한 감각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요. 우리가 한 순간의 오독도 허용하지 않고 복원해야 합니다.”

노트가 숨을 고르며 몸을 흔들자, 눈앞의 코마레어가 흔들리는 파도처럼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발산하는 음파는 흔들리던 언어의 생명을 다시 고요하게 안정시키는 듯 보였다. 에다르는 전례 없는 음운변형 공식들을 적용해, 산호껍질 속 알파벳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코마레어의 기억 전체가 ‘소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마빛은 고대 코마레어의 신화와 의식들을 떠올리며, 때로는 간절함으로, 때로는 경외심으로 무릎을 꿇고 고유의 정신과 연결하는 듯했다. 그녀의 지식과 영감은 미세한 음성 표헌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잠시 후, ‘코마레어’는 점차 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언어는 이제 단순한 낱말들의 조합이 아니라, 고요하고 뚜렷한 의식이 깃든 독립된 인격체였다. 그 모습은 산호와 바람과 사람의 숨결이 어우러진 환영처럼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그 순간, 경보음이 울렸다. 보존소 전체가 흔들리며 경고했다. “언어 사멸의 급속 확산 감지!” 잠시 뒤 암흑이 공중을 뒤덮었고, 사악한 ‘침묵의 빛’이라 불리는 이세계 괴기가 보존소를 덮쳤다. 침묵의 빛은 언어를 앗아가는 존재다. 그것은 말과 뜻을 삼켜버리는 혼돈의 존재로, 오래 전부터 언어의 기억을 앗아가며 존재를 파괴해왔다. 침묵의 빛이 다가오자 코마레어의 빛도 얼어붙었다. 만약 침묵의 빛이 코마레어를 삼키면, 사라진 언어들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직원들은 즉시 팀워크를 발휘했다. 에다르는 언어의 구조를 ‘언어파동방벽’으로 급히 재조합하며 침묵의 빛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 실라는 언어감정조작을 통해 침묵의 빛에게 순간적인 혼란을 선사하며 시간을 벌었다. 노트는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진동을 증폭해 침묵의 빛의 소통망을 교란했고, 마빛은 코마레어의 의지를 불러내어 진심 어린 메시지와 언어의 순수성을 침묵의 빛에게 뿌리려 했다.

그러나 침묵의 빛도 수십 세기를 쌓아온 어둠의 파괴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 기세는 점점 강렬해졌고, 보존소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져갔다. 이 극한의 상황에 팀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에다르는 광채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중대한 진실을 외쳤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믿어야 할 유일한 것, 침묵을 깨뜨리는 한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진 진심입니다. 아무리 말이 사라져도, 그 말들에 담긴 진심만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언어의 경계에 서서, 모든 말이 무색해도 남는 그 진심으로 뭉쳤다. 코마레어는 그 진심의 빛을 품고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침묵의 빛을 뿌리치는 결정적인 빛의 폭발이 보존소 전체를 감쌌다. 순간, 사라질 뻔했던 언어의 생명이 다시 살아 숨 쉬는 희망의 기운이 번졌다.

하지만 그들과 언어들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모험을 통해 직원들은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이며, 그 하나하나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 모험이 끝나면 어떤 언어가 다음 차례로 사라질지, 또 얼마나 깊은 비밀들이 잠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택한 길 위에는 무한한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보존소의 저 멀리, 미지의 언어들이 다시 한 번 숨결을 되찾으며 새로운 여명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다르와 그의 팀원들은 그 찬란한 선율을 따라, 다음 미지의 언어를 향한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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