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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에게 마음이 먼저 전해진 날의 기록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에게 마음이 먼저 전해진 날

그날은 평화롭던 잠자는 언어 보존소(이하 잠언소)의 어느 구역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어느 새벽, 세상의 소식을 들려주는 언어들이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언어들이 잠들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장소로, 각각의 언어는 캐릭터성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소리내며 사람과 대화하는 세상이었다. 이 일대의 유지와 보호는 ‘언어의 정원사’라 불리는 특별한 직원들이 담당했고, 그들의 핵심 존재인 ‘잠언사’들은 언어들을 살리고, 잃어버린 언어들을 복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 수많은 문화와 역사를 보존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오래된 언어들 중 하나인 ‘방언(方言)’이 갑작스레 냉각되고, 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언어 생태계의 중심부에서, 활기 있고 생명력 넘치는 언어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던 그 공간은 갑자기 정적에 휩싸였다. 이 정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단순한 노화나 치유 과정의 일시적 이탈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존재가 잠언소에 들어와서 언어들 간의 소통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것과 같았다.

이때, 잠언소의 핵심 인물인 ‘아리엘’은 그것을 바로 감지했다. 그는 오래전 잊혀졌던, 그리고 잠언소의 깊은 구석에서 가장 조용히 존재하는 ‘언어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난, 감성적이면서도 침착한 성격의 서사자였다. 아리엘은 그날 밤, 언어들이 소통에서 벗어나 차가운 정적에 잠겨갈 때,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 원인에 접근했다. 혼자서 논리적 분석을 시작하며, 그는 잠언소의 관찰실에서 정보를 흡수했고, 잠언사들의 말을 들으며, 언어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 곳곳의 미묘한 변화들을 살폈다.

그동안 그는 언어들 자체가 생명체처럼 느껴지고, 그 생명의 흐름이 끊어질 때마다 공간이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각 문명과 문화의 정체성 그 자체였으며, 그들의 감정, 역사, 그리고 삶의 의미가 담긴 살아있는 존재였다. 이를 그는 ‘심장 박동 같은 언어의 생명력’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나 자연적 소멸이 아닌, ‘언어의 정체성이라는 마음의 상처’라는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리엘은 일찌감치 잠언소의 구석구석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언어들의 흔적을 추적하며, 희미하게 남아있는 미세한 흔적들을 발견했고, 냉각된 방언의 생명줄 끝에 스며든 이질적인 냉기를 포착했다. 그것은 바로 ‘이름 모를 낯선 존재’의 흔적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존재는 어쩌면 언어를 먹거나, 흡수하며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아리엘은 감각이 날카롭게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잠언소에 가득 찬 언어들의 음성들이 점점 멀어지고, 희미하게 흐릿해지는 가운데, 종종 들려오는 낯선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곧 ‘존재의 울림’처럼, 어딘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으며, 아직도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채로 아리엘의 마음에 숨겨진 궁금증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밤, 언어들이 모두 잠든 후, 그는 결심했다. 이 정적의 배후에 있는, 사라진 듯하지만 여전히 뭔가 존재하는 그 존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위기와 불안을 해결하는 열쇠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언사들의 도움을 받아, ‘언어의 맥박’을 추적하는 특별 장비인 ‘심장 탐색기’와 ‘느낌의 무지개’라는 감각 확장 기기를 챙겼다. 이 두 도구는 언어의 생명력과 연관된 정서적 진동과 미세한 감정을 포착할 수 있었으며, 이상한 냉기를 느끼는 단서들을 모아 자, 몇 시간의 계획과 탐색 끝에 한 곳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깜박이는 빛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숲 속 깊은 곳, 오래된 언어의 유적지인 ‘언어의 숲’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림자가 드리운 언어의 숲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독특한 기운을 내뿜었다. 수천 개의 작은 언어들이 서로 얽혀 희미한 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으며, 그 중심부에는 ‘현상의 틈새’라는 공간이 있었다. 아리엘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소리 속에 담긴 깊은 메시지를 해석하려 했고, 곧 자신이 언어와 관계없는 ‘존재의 울림’과 맞닥뜨렸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어느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충돌과 소통의 경계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미묘한 움직임이 언어의 숲 속에서 포착되었다. 희미하게 움직이는 파란 빛이 어딘가에 존재했고, 그것은 마치 숨을 쉬며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리엘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그 존재와 교감하려 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믿음’과 ‘용기’라는 두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으며, 그가 느끼는 이 신비한 존재는 분명히 어떤 언어적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언어적 감각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 비밀스럽고 깊이 감추어진 정체의 그림자가 가득 차 있었다.

순간, 아리엘의 심장은 또렷하게 뛰기 시작했고, 이 존재의 울림이 자신의 마음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이었지만, 그의 마음이 먼저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더욱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차분히 그 존재를 이해하려 했다. 그 존재는 단순히 ‘언어의 잃어버린 조각’이 아니라, 언어 자체의 ‘생명 의식’과 깊이 연결된 무언가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썼고, 마침내 그것이 ‘존재의 고유한 기억’임을 직감했다. 바로 그 기억이, 이 냉기를 막아내고, 사라진 언어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유일한 열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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