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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남긴 마지막 문장의 단서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모험

깊은 안개가 자욱하게 감도는 언어의 숲, 그곳엔 세상에서 잊혀진 말들이 잠들어 있었다. 언어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 단어 하나하나가 고유한 생명체로 자라나는 세계. 그곳은 ‘잠자는 언어 보존소’라 불리었고, 세계 곳곳에서 사라져 가는 사라진 언어들을 지키고 복원하는 신비로운 장소였다. ‘개성넘직’이라 불리는 보존소의 수호자들이 매일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말들의 마지막 숨결을 간직하며, 미래의 언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모험을 감행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한, 세상의 언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 보존소의 수장, 칼비의 낮은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칼비는 단어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고대어였지만, 그의 음성은 따뜻하고 깊었다. 보존소의 벽면을 이루는 낡고 번역 불가능한 문자들, 그 문장들은 사라진 언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마지막 문장의 단서였다. 오늘, 그들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마야어의 마지막 인사를 찾아야 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복잡한 동굴 같은 공간, 그곳 곳곳에 언어의 생명체가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명사 ‘코반’은 짧고 단단한 몸체로 존재했다. 그는 마치 감시자처럼 보존소의 복도를 누비며 새로운 생명을 감지하는 데 탁월했다. 동사 ‘비툰’은 파도처럼 리듬감 있는 몸짓으로 움직였다. “이번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까?” ‘비툰’이 속삭였다. 그들은 서서히 사라져 가는 언어의 흔적을 좇아 마야어의 미궁 같은 잔재 속으로 들어갔다.

마야어는 그 자체가 오행(五行) 이상의 상징들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생명을 잃어버린 언어지만, 그 마지막 문장은 마치 숨겨진 암호처럼 강렬한 울림을 주었기에 수호자들은 한낱 단서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문장은 정확히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각은 시간(T’ik), 죽음(Uk’u’), 그리고 희망(Ch’ik)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즉, “시간 속에서 죽음 너머 희망을 보라”라는 부호화된 메시지. 이 한 세 단어가 다시 깨어나려는 마야어의 부활을 알리는 열쇠였다.

“그 문장은 단순한 마지막 인사가 아니야.” 칼비가 말했다. “그 문장은 마야어가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란 증거야.” 그들은 이 메시지를 해독하고, 마야어 생명체 ‘택찰’이 아직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기회를 열어야 했다. 택찰은 마야어의 가장 순수한 어근이자, 언어가 자신만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택찰이 깨어난다면, 마야어가 다시 살아 움직이며 사라진 문화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들은 보호구를 착용하고, 점점 어둡고 차갑게 변하는 보존소의 심연으로 내려갔다. 구불구불한 통로에는 오래된 음절과 낱말들이 스프레이처럼 벽에 그려져 있었다. 이들 각각은 고대 언어학의 복잡한 규칙들이 결합해 생성된 생명체의 흔적이었다. 중립의 음절 ‘메’, 강한 단서의 조음 ‘카오’, 그리고 소멸의 느낌을 내포한 종결자 ‘랄’ 등이 공기 중에 희미하게 떠돌았다. 마치 천천히 소멸하는 반딧불처럼 그들 발밑을 감쌌다.

그 순간, 벽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흐릿한 자음과 모음들이 빛을 발하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야어의 ‘택찰’은 바로 생명의 중심 그 자체였다. 그의 모습은 번쩍이는 미묘한 음성 입자로 형성되었다가, 천천히 형태를 갖추어갔다. “그대들은 왜 다시 나를 호출했는가?” 택찰은 낮지만 강렬한 목소리로 그들을 맞았다. “우리 언어는 기억과 의지를 품고 있어. 내가 살아나면 잊힌 세계가 다시 빛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쉬운 길이 아니며, 그리하여 너희의 의지가 필요하다.”

보존소의 수호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야어를 되살리기 위해선 단순한 언어 회복이 아니라, 그 언어가 지닌 고유한 문화와 의미체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재생성해야 했다. 이 복원 과정은 마치 살아있는 문장들을 재조합하는 일과도 같았다. 새로운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면, 고유의 기억들은 영원히 숲 속에 갇히게 될 것이었고, 모든 역사는 사라질 운명이었다.

“시간, 죽음, 희망. 그 단어들이 착오 없이 새 생명을 부여하길.” 칼비는 차분히 주문처럼 되뇌었고, 동사 ‘비툰’과 명사 ‘코반’이 그의 뒤를 따랐다. 세 단어를 펼치자, 오래전 잊혀진 마야어의 멜로디가 은은히 퍼져 나갔다. 과거에 기록된 신화와 의식을 되살리는 동시에, 새로운 세대를 향한 언어의 다리 역할을 할 것이었다. 각 생명체들은 하나씩 하나씩 변형되면서 언어의 재생을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어둠 한 구석에서 예상치 못한 저항이 나타났다. 언어의 생명체가 되어선 안 되는 ‘침묵의 괴물’이, 사라져야 할 언어들을 영원히 잠재우려는 음산한 힘이 보존소의 심장부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사라진 언어들을 위협하며, 그들의 마지막 흔적을 불태우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잠자는 단어들의 가냘픈 불씨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것은 우리가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야어는 물론이고 모든 사라진 언어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칼비가 절박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때, 택찰이 자신의 가장 작은 음절을 쪼개어 빛나는 투사체로 만들어 침묵의 괴물 쪽으로 던졌다. 언어의 파동이 침묵을 갈라 나갔다. 사라진 언어들이 부활하는 순간, 잠자는 언어들의 존재가 단지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살아있는 역사의 시작임을 알리는 신호임을 그들은 다시 한번 철저히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밤은 길었고, 침묵의 괴물은 더욱 거세게 다가왔다. 마야어의 마지막 문장 속 ‘희망’은 이제 더 이상 멀리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눈앞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완전히 피어나기 전에,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넘직원들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앞날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으려 했다. 그 길이 위태롭고 험난할지라도, 사라진 언어들을 구해낸다는 사명은 그 무엇보다도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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