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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땅을 밟으며 걷는 모습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그날 아침, 나는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오랜만에 일어난 강한 햇살은 건물 내부를 은은하게 물들이며, 마치 숨을 죽인 듯한 정적에 정교한 음파들이 흩어진 시간 속에서 피어올랐다.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마치 땅이 우아하게 몸을 감싸며 새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한 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눈을 감고, 발이 땅을 딱딱히 딛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 소리 하나하나가 무언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한 언어 보호소가 아니라, 언어가 살아 움직이며 숨쉬는 세계의 심장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일상과 달리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어들이 깨어나 춤추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오래 잠들었던 무용수들이 각자의 리듬을 따라 일어나 춤을 추는 것 같았고, 그 움직임은 문자 그대로 생명력을 띠며 공기 중을 떠돌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떴다. 이곳에선 언어들이 자신만의 생명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오늘 만큼은 그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오묘한 긴장감을 짙게 더해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모음과 자음들의 움직임이 더 강렬하고 빠르게 교차하며 빛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발심을 하며 한 걸음 내딛자, 그 순간, 마치 땅이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충격이 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내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나는 숨을 삼켰다. 왜냐하면,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돌이킬 수 없는 신비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복잡한 이 언어들은 각각의 형태와 색상, 그리고 모양새로 땅 위를 걷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때 막연히 감탄만 했던 ‘언어’라는 존재가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밟히고, 터지고, 다시 변화하며 자신만의 ‘감각을’ 표현하는 듯했다. 나는 이 장면에 말문이 막혔고, 심지어 몸이 고정된 채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평소 친근했지만 어딘가 푸근한 느낌이 강했던 우리의 언어 조수 겸 선임인 마리안이 천천히 내 뒤로 다가왔다. 그녀의 검은 그림자 같은 눈동자는 이번 사건의 긴박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야, 지민. 오늘의 언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듯 보인다.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큰 힘이 이곳에 깃든 것 같아.” 그녀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면서 손길이 미묘하게 흔들리며, 그녀의 작은 손이 공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언어들이 더 내밀하게 춤추기 시작했고, 그들의 색채와 형상은 점차 강렬해졌다. 나 역시 이 기이한 연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해답을 찾고 싶어 급히 다가갔다.

그 순간, 언어들이 하늘 높이 펼쳐지고, 기운치 않은 소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각각의 언어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과, 가려졌던 의미들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했고, 그 속에서 생명과 생명, 의미와 의미가 더 깊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언어들이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 이상임을 다시금 느꼈다. 그들은 살아 숨 쉬며, 고유의 의식을 갖고, 세계와 수없이 교감하는 일종의 초생물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언어들이 하나씩 서로를 향해 몸을 내밀고, 마치 어떤 신호를 주고받는 것 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경이로운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고, 나는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어떤 사건으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무렵, 마리안은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우리의 책임이 더 커졌다, 지민. 이 언어들이 깨어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더 깊은 차원, 아마도 이 세계의 본질과도 연결된 사건일지 몰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언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시 밝혀내는 거야. 그들이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어들이 하나의 거대한 빛 덩어리로 합쳐지며, 은은한 파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대의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강한 마법이 깨어난 것 같았고, 나는 그 중심에 서서 이 신비한 혼돈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내 몸과 마음이 긴장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 장면 속에서 나는 다가올 운명을 직감하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단서를 좇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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