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 세상 끝자락 어딘가에서 사라진 듯이 잊힌 언어들이 잠들어 있는 곳,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 넘치는 직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대륙을 누비며 잊혀진 말들과 그 속에 품어진 생명 같은 문자를 구출하는 특수한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보존소는 단순한 기록보관소가 아니었다. 각 언어가 의인화된 형태로 살아 움직이고, 숨쉬고, 어떤 때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는 세계였다.
오늘은 ‘기억의 강’을 따라 마지막 남은 고대 언어를 찾아 떠나는 날이었다. 기억의 강은 어둠과 빛, 시간과 공간이 뒤엉킨 미궁 같은 곳이었다. 수천 년 전 사용되던 고대 언어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남아 숨 쉬고 있었다. 이 강가를 누비며, 사라진 언어의 잔향과 숨결을 담아내는 작업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가치 있는 모험이었다.
첫 번째로, 강기슭에서 만난 것은 ‘아르코드(Arkod)’였다. 아르코드는 고대 신비문자처럼 생긴 복잡한 음소들이 의인화된 형태였다. 그들은 흡사 물결처럼 우아하게 몸을 흔들며, 미묘한 고대 단어를 입속에서 굴리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강가 주변의 오염과 현대 문화의 급속한 전파로 인해 아르코드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 직원들은 이들의 크립틱한 어근(語根)을 채집해 안전한 디지털 은막에 보관했다. 이 과정에서 아르코드의 대표적인 어휘들이 발화될 때마다, 주변 공간에는 은은한 고대의 향기와 함께 전설 속 주문들이 흘러나왔다. 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했다.
다음은 기억의 강의 중심부, ‘맑은 물의 둔덕’ 근처에서 발견한 ‘잔아이아(Jzanaia)’라는 언어였다. 잔아이아는 매혹적인 음운 체계로 유명했는데, 수많은 성조와 특이한 자음군이 마치 노래하듯 결합했다. 황금빛 안개를 머금은 그 언어들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주변 자연과 교감하며, 돌연변이처럼 형태를 바꾸기도 했다. 보존소의 언어학자들과 모험가들은 이 변화무쌍한 패턴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들은 잔아이아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명체처럼 자라나고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잔아이아의 음성들은 고대 자연의 생명력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 언어의 소멸은 바로 자연과의 소통 단절을 의미했다.
모험은 깊은 강속으로 이어졌다. 눈부신 푸른 빛을 발하는 강바닥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존소 직원들은 ‘실리아 마크(Silia Mark)’라는 언어를 마주했다. 실리아 마크는 주술과 신비학에서 사용되던 언어로, 글자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다채로운 환영으로 나타났다. 이 언어의 독특한 점은 그리기 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실리아 마크의 문장들은 공간과 시간의 틈새를 뒤틀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보존소의 ‘기억의 기록자’인 에리나는 이 문장들을 꿰뚫어 해석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샜고, 마침내 고대 환상서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를 발견했다. 그 내용은 사라진 언어들을 보존하고자 한 수천년 전 현자들의 혼이 담긴 언어의 영혼 불꽃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기억의 강에서 가장 깊은 곳, 모든 언어가 한자리에 모이는 ‘언어의 심연’에서 갑자기 어둠이 번졌고, 오래된 속삭임처럼 들려오던 소리들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고대 언어의 존재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 보존소의 직원들은 간신히 신속한 판단을 통해 생명을 잃기 직전인 언어들을 집어 들었고, 그 힘을 결집해 서로 연결하면서 빛나는 실타래를 만들었다. 그 실타래는 인간 세계와 언어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어, 소통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이 모험은 끝이 아니었다.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가장 젊은 연구원인 모린은 강변에서 발견한 한 자리에 나뭇잎처럼 부드러운 낡은 필사본에서 이상한 문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전설 속 언어의 단서였다. “기억의 강을 따라가면, 언어의 심장에 닿으리니, 그곳에 모든 비밀이 깃들어 있다.” 이 문장은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깊고 미지의 세계일지 예고하는 듯했다. 모린은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우리, 새로운 발자취를 찾아 떠나야 합니다. 언어는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잠자는 언어 보존소의 개성 넘치는 모험가들은 기억의 강의 끝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아 떠나는 또 한 번의 여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언어가 살아 숨 쉬는 세계가 그들 뒤에서 속삭이듯 깨어나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소리들의 마지막 한 자락을 붙잡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